<평화의길> 소식지 여름호

관리자
2019-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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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말


“제주, 평등의 정랑문화  에서 평화의 희망을 만난다”


명진 평화의길 이사장



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하신지요? 

6월을 시작하며 우리 평화의길 회원분들과 함께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제주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 할 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곳입니다. 바다며 오름이며, 산과 하늘 모두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곳이지요. 

하지만 평화의길이 6월에 제주를 방문한 것은 그러한 아름다움을 쫓아서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는 감춰진 4.3의 이야기를 따라 걸으면서 우리가 가야할 평화의 길이 뭘까 다시금 생각해보기 위해 찾은 것이었습니다. 6월 1일과 2일 이틀 동안 조천읍 북촌리 4.3길과 안덕면 동광리 4.3길 평화순례를 다녀왔습니다. 해방 후 도민의 10분의 1이 희생된 4.3사건으로 인해 제주 전 지역이 고통으로 신음했습니다. 일출로 유명한 성산일출봉, 바다로 곧장 폭포수가 쏟아진다고 하여 이름난 정광폭포며 송악산, 용머리해안까지 아름다운 비경이 있는 곳에는 4.3의 아픔이 함께 서려져 있다고 합니다.   

지난 호에 제가 “평화의 일상을 바란다면 일상을 평화로 살자!”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평화의 일상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즈음 저의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주에 와서 나름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흔히 제주를 삼다도라고 하지요. 바람, 돌, 여자가 많다고. 삼무도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거지, 도둑, 대문이 없기 때문이지요. 제가 답을 찾은 것은 많다는 삼다 속에서가 아니라 없다는 삼무 속에서였습니다. 

제주에는 다른 고장에 없는 정랑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문의 역할을 하되 문이 아닌 것이 정랑입니다. 집 입구 담벼락에 구멍 세 개를 뚫어 놓고 나무를 걸어놓고 문의 역할을 하는 정랑. 나무 3개가 다 걸려 있으면 주인이 먼 곳에 며칠간 출타 중이라는 표시입니다. 2개만 걸쳐져 있으면 주인이 조금 먼 곳에 가 있는데 하루쯤 걸린다는 뜻이고요. 1개만 걸쳐져 있으면 가까운 곳에 볼 일 보러 갔다 몇 시간 안에 돌아온다는 의미랍니다. 사람이 있을 땐 아무 것도 걸어놓지 않습니다.  

집에 문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언제쯤 돌아온다는 표시를 해놓는 것인데 육지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이 집은 지금 빈집이니 털어가라는 신호가 되고 말테니까 말이지요. 공동체가 없고 서로 믿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빈부의 차이가 없다는 말입니다. 누가 쌀밥 먹을 때 꽁보리밥 먹는 집에서는 쌀밥 먹고 싶은 욕심 생기기 마련이고 그런 불평등이 생기면 서로 터놓고 살 수가 없는 겁니다. 차별이 생기면 갈등과 분란이 생기고 결코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손님이 집에 오거나 해서 대접을 급히 해야할 때 양식이 부족하면 이웃집에 가서 사람이 없을 때도 양식을 퍼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오면 양식 조금 퍼왔다 수확하면 돌려주겠다고 하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나누고 사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허락받지 않아도 될 정도라는 거지요. 만일 집주인이 오래 집을 비우고 출타 중인 경우 그 집에 소나 돼지 같은 가축이 있으면 부탁받지 않아도 내 집의 가축처럼 돌봐주곤 했다고 합니다. 빈부의 차이가 없이 평등하게 사는 공동체였기 때문에 제주에 거지도, 도둑도 없었던 겁니다. 어디서든, 어떻게든 서로 나누고 챙기고 살았으니까요.  

우리는 평화를 원합니다. 그리고 평화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합니다. 평화, 평화가 대체 뭘까요?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의 한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없다고 평화가 절로 이뤄지는 것일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평소 평등이 없는 평화는 없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생각하면서 평화를 얻으려면 평등의 가치를 찾아야 하는데 그걸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를 늘 고민해 왔습니다. 그걸 이번에 제주 4.3길을 걸으면서 정랑 문화를 알게 되면서 ‘이게 평등이고 평화구나!’ 하는 번개 같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평화의 섬이라 불리는 제주는 평화의 섬 이전에 평등의 섬이었습니다. 평등의 섬이었기에 평화의 섬이 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제주를 많이 가봤고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알맹이는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이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잘나거나 못나거나 많이 가졌거나 덜 가졌거나 관계없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어야 평화의 세상도 열릴 것입니다. 

4.3의 곡절 많은 아픔이 서린 땅 제주. 그러나 이 제주는 평화의 섬, 희망의 섬이기도 합니다. 생활 속에서 만나는 나이 많은 어른들은 남녀를 떠나 모두 ‘삼촌’이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이 같거나 다르거나 관계없이, 혈연적 관계에 상관없이 만나는 모든 어른은 다 ‘삼촌’이 되고 ‘조카’가 되는, 그래서 마침내 모두가 하나의 커다란 식구로 살아가는 공동체, 철문을 걸어 잠그고 지키고 감추는 삶이 아니라 ‘정랑처럼’ 터놓고 함께 사는 이 아름다운 공동체가 우리 삶 속으로 깊이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꿈꾸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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